
1. 나는 책을 싫어했다, 아니 무서워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려웠다. 책을 펼치면 내 안에 어떤 결핍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집중하지 못하고 몇 문장 읽다가 멍해지는 나 자신,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 되돌아가 읽는 순간의 좌절감.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책은 점점 '나는 못하는 것'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학생 시절에는 독서를 성적으로 판단했다. "이과생이라 책은 잘 안 읽어" 같은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책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감각이 무뎠고, 긴 글에 집중하는 인내심도 없었다. 나에겐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만큼 멀게 느껴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책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대학, 사회생활을 거쳐 어느덧 30대 초반이 되었지만, 독서는 여전히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 책 추천을 하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나는 안 될 거야'라고 단념하고 있었다.
2. 책을 읽어야 했던 진짜 이유는, 삶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왜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을까. 단순히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삶이 공허하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낀 날, 책을 찾았다.
모든 것이 자동처럼 흘러가는 일상.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며 뉴스 몇 줄을 읽고, 출근길엔 음악으로 귀를 막는다. 회사에선 반복되는 일, 무의미한 대화, 눈치 보기. 퇴근 후엔 유튜브를 켜고 눈으로는 쇼츠를 보면서 손으론 배달앱을 넘긴다.
하루가 다 가고, 가끔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이상하게 공허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지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밤, 그런 마음이 유독 크게 밀려왔던 날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랬는데, 책 읽으면서 조금 달라졌어. 생각이 정리된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며칠 뒤, 나는 마트 옆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그 책은 나의 첫 독서 습관의 시작이었다.
3. 독서 습관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책을 사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금은 설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날 밤 책을 펼쳤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겨우 10페이지를 읽고 눈이 침침해졌고, 이해가 잘 안 돼 같은 문장을 두 번이나 읽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덮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엔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번엔 ‘이해’가 아니라 ‘변화’를 위해 책을 읽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빨리 읽는 게 아니라, 꾸준히 읽자는 목표를 세웠다.
나는 ‘하루 1페이지’라는 작은 목표를 정했다. 정말 작다. 하지만 그 작음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하루에 한 페이지만 읽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작하면 다음 장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5분, 10분, 때로는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중요한 건 무조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읽었다는 점이다. 나의 독서 장소는 침대 옆 조명 아래, 따뜻한 담요 안이었다. 그 공간은 나만의 '읽는 장소'가 되었고, 내 몸은 자연스럽게 그 시간만 되면 책을 찾기 시작했다.
4. 독서를 시작하니 생각, 말, 글이 달라졌다
독서를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팀 회의 중 내 의견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또렷하게 말할 수 있었다. 끝나고 팀장이 “요즘 말 되게 정리 잘한다?”고 칭찬했다.
이전에는 늘 말을 돌려 하거나 핵심을 놓치곤 했는데, 책을 읽으며 내 안에 ‘문장 만드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았다. 책 속 표현들이 나도 모르게 내 말에 녹아 있었고, 특히 감정 표현이나 예시를 드는 방식이 훨씬 풍부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던 글쓰기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예전엔 ‘막막하다’는 기분이 강했지만, 이제는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고, 내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책을 읽는 건 정보를 모으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연습’이라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책 한 권만 있으면 어느 카페든, 공원 벤치든 나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5. 지금도 여전히, 작게 그리고 꾸준하게
나는 여전히 빠른 독자도 아니고, 전문 독서가도 아니다. 한 달에 읽는 책은 2~3권 정도이고, 어떤 날은 하루 한 줄도 못 읽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부심이 있다. 이제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책은 더 이상 나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책을 통해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로하며, 나를 조금씩 키워가는 중이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독서’라는 단어조차 버겁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책이 있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내 정체성을 바꾸었고, 내 일상에 성실함과 평온함을 불러왔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독서 습관을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냥 하루 한 페이지, 그것만 지켰어요.”